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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목줄이 벗겨지면

https://www.youtube.com/watch?v=7m5Ehb8dBq4

 

 

 

 

 

 

 

 

"난..."

"..."

"네가 있어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작은 미소가 번진 입가에서 피가 쏟아져나온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가 무너진다. 황족이 찌른 칼은 천천히 빠져 나가며, 그 너머에는 연기가 피어오른 총을 쥔 딜런의 동료가 숨을 몰아쉬고 있다. 

 

 

“....딜런?”

 

 

폭격음과 총성이 울려 퍼지고, 뒤섞인 혁명군과 제국군이 귀를 찢는데, 그 모든 소음은 아득히 멀어진다. 무너져가는 바닥과 피가 튄 유리, 연기와 먼지 바람, 불꽃이 어지럽게 시야를 가른다.

 

그러나 초점은 흐리다. 주변의 모든 움직임은 수채화처럼 번져간다. 시야에 잡히는 것은 오로지 딜런의 얼굴. 그 창백한 눈꺼풀.

모든 총성, 고함, 피 튀기는 소리는 전부 차가운 수조 속에 잠긴 듯 무음으로 멈춘다. 시간이 멈춘 듯 했다. 고막 너머에서 울리는 건 천천히 느려지는 딜런의 심장 박동 소리뿐. 

 

 

이런 소음 속에서도 어째서 네 숨소리는 이렇게 크게 들려오는 걸까.

 

 

의식도 없이 달려나가 쓰러지는 딜런의 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끌어안은 그 몸은 말도 안 되게 가볍게 느껴졌다. 미약한 숨결이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 같아서, 식어가는 온기가 어딘가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이건… 계획에 없었다. 어디에도, 한 순간도, 이 장면은 그리지 않았다. 

 

 

“...안 돼. 지금은 안 돼. 왜 하필… 왜, 네가…”

 

 

딜런의 젖은 옷이 팔에 감기고, 검게 물든 피가 손 끝을 타고 번진다. 딜런의 심장을 끌어안고 귀를 가져다 대는 내 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이런, 마지막은…. 약속하지 않았다. 딜런. 눈 떠라. 눈을… 떠.”



희미했다. 그의 몸이 식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손 끝에 닿는 온도에서 느껴졌다. 단순한 현실이 아니라 마치 벌처럼, 형벌처럼 느껴졌다. 



딜런이 죽는다.



왜 그런 생각은 하지 못 했던 걸까. 나는 나의 죽음으로 한시라도 빨리 도망치고 싶어 비겁함으로 무장하고 너를 시야 밖으로 밀어내려 애썼다. 네가 떠나기 전에, 내가 먼저 떠나면 그만인 이야기. 더 나아갈 수 없게 그어놓은 선의 완결. 나와 그의 관계는 여기까지여야한다고 끝낼, 완벽한 마무리가 모두 틀어진다. 심장이 짓이겨지는 듯한 통증이 호흡을 가로막는다. 

 

두 눈은 허공을 향해 떠 있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숨을 아무리 들이마시려 해도 공기가 폐로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피로 얼룩진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쥔다.



“왜… 대체 왜 그랬던 거냐,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한 거냐고!! 왜…!”



 의식이 혼미한 그의 뺨을 붙잡고, 절규한다. 목소리는 점점 숨이 넘어갈 듯 엉켜 물기에 젖어든다.



“내가 죽어야 했다. 내가— 여기서 끝났어야 했다고!!”

 

“네 옆에서 조용히 죽는 것 하나, 내가 요구한 건 그게 전부였다. 그게 내가 바랄 수 있는 마지막이었다고. 왜, 그걸 망가뜨려, 왜!!”

 

“네놈이 뭔데, 내 마지막을 뺏어가.”

 

“내가 대체, 너한테 뭐라고…”

 

“나는…”

 

“나는 이 목숨을 받을 자격이 없어...”




피와 먼지로 얼룩진 내 손가락. 그 손가락에 끼워진 작고 단단한 반지의 보석에 깃든 청록빛이 서서히, 아주 서서히 탁해진다. 꺼져가는 빛이 꼭 사형 선고처럼 내려와, 나는 입술을 깨문 채 숨을 삼켰다.

 

 

“...거짓말이지.”

 

 

떨리는 손 끝으로 반지를 만져본다. 시장 바닥 아무거나 주워와 마법을 걸었다곤 했지만 사실 나는 내 멋대로 너를 추억할 물건으로 삼곤 했다. 내 인생 가장 위험했던 변수, 불손한 딜런 시어도어. 그에 걸맞는 불손한 유품. 소중한 물건 따위 남기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지옥에 가져갈 물건으로 무언가 남기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동전 하나에도 반지를 살 수 있다는 게 놀라웠지만, 내가 평생에 걸쳐 입어온 것들 중에 가장 어울렸고, 마음에 들어서 만족스러웠다. 설령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내가 죽음을 맞는다고 해도 네 곁에서 죽어가는 것과 비슷한 위안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네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은, 고작 해야 그 정도의 망상으로 끝났던 것이다. 네가 나를 대신하여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딜런.”



이름을 불러도 대답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다. 흘러나온 탄식은 오로지 나의 것. 고장난 것처럼 혼란스러운 신음이 어쩔 줄 모르며 새어나오는 순간, 나는 내 입에서 흘러나온 줄도 몰랐다. 스스로의 목소리가 너무 슬프게 들려서. 어쩌면 이 손이 싸늘하게 식기 전에 잡았어야 했다.

 

그때 단 한 번만이라도.



 

 

-

 

 

 

 

아주 조용한 새벽이었다. 

 

그날 나는 일부러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누워 있었다. 해독제의 부작용으로 열이 오르고, 몸은 시체처럼 차가워져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당시엔 딜런의 피를 해독제로 마시며 연명하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수치스러웠다. 오로지 타인의 희생 위에 염치 없이 목숨을 빌붙어 사는 삶. 이건 내가 원한 삶이 아니다. 

 

그러다 인기척에 깼다.

열린 문 틈으로 희미한 빛과 함께 방에 들어온 딜런은 조용히, 아주 조심스럽게 유리병을 두었다.

 

식지 않은 혈향이 팔뚝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나는 그 냄새가 견딜 수 없어서 깨지 않은 척 등을 돌렸다. 하지만, 차가운 이마에 퍼지던 손의 온기를 기억한다. 그 작은 접촉에 나는 숨을 죽인 채 눈을 떠야할까 고민했다. 눈을 뜨면 뿌리쳐야했다. 이 손을 뿌리쳐야만 했는데… 나는 비겁하게 눈을 감은 채, 그저 이 손이 지나가길 기다리다, 밤마다 이 비밀스러운 방문을 기다리게 되었다.

 

매일 밤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다음 날 너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

 

 

 

 

 

 

https://www.youtube.com/watch?v=m0vvyAXSVdY

 

 

 

 

 

 

 

 

식어가는 그를 끌어안으며 지난 날이 스치고 가면, 죽음을 앞두고서야 진실을 깨달은 것이 문득 우스워졌다. 도망치며 외면해온 대가가 무거웠다.

 

메마른 슬픔이 쩌적거리며, 단단하게 두르고 있었던 갑옷같던 짐승의 껍데기가 금이 가듯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마음이 무너지는 건가. 나에게도 무너질 마음이 있었나. 인간이라 불릴 수 있는 무언가가 안에 남아있다고는 스스로도 믿지 않았는데.

 

차가운 딜런의 몸을 끌어안은 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울부짖고, 눈물 흘리고 있었다. 

 

그건 너무 늦게 발견된 마음이었다. 나는 딜런과 함께 살고 싶었던 것 같다. 인정해버리고나니 후회가 파도처럼 덮쳤다. 그의 손의 따뜻함을 잠들지 않은 채로 느끼고, 만져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딜런이 나를 소중히 여긴 것처럼, 나도 그를 소중히 여겼으면 어땠을까. 그가 웃을 때 나도 웃고, 같은 시간을 살아갔더라면. 겪어보지 못한 삶을 받아들였더라면.



…이렇게 미련할 수가.



멍하니 흘러가는 사념에 스스로가 얼어붙는다. 마치 타인의 고백을 엿들은 듯, 모든 것의 끝을 앞두고 그 말이 나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조차 믿을 수 없다.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해온 거지?

 

뭘 어쩌려고.

 

이제와서.



수많은 의심과 부정, 자책.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반복했던 수많은 이유들이 머릿속을 할퀴었다. 나는 딜런의 가슴에 엎드린 채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나를 증오하라고 했던 건 나였다.

선을 긋고, 멀어지려 했던 것도, 손길을 매번 모른 척한 것도 전부 나였는데.

 

그런 내가 지금 너를 끌어안고, 괴로워한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죽어서야 가족을 가질 수 있다니, 가엾군.’




그 말이 예언이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빨리 네가 내린 유일한 명령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 그토록 밀어내고자 했던 ‘인간’으로 살아가는 삶.

 

따르겠다고 했으나 믿지 않았다. 아니나다를까 너와의 일상은 늘 나로 인해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자유란 그저 목에 채워진 사슬의 새로운 이름일 뿐이었는데, 짐승이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겠는가. 딜런의 진심을 받아들인다는 건, 지금껏 외면하고 짓밟아온 자신의 죄를, 마음을, 두려움을 전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일이다.

 

그 유일한 출구를 자처하는 그는 진심을 돌려달라고 한 적이 없으며, 받아달라고 한 적도 없었고, 가족이 되자고 강요한 적이 없는데. 그저 살아서 저와 함께 있어달라는 그 부탁이 너무 커서, 너무 거대해서 감당할 수가 없었다. 딜런의 사랑은 따뜻한 담요처럼 나를 덮었지만 그게 마치 용광로처럼 느껴지는 게 내가 끔찍한 괴물이라는 증거였다.

 

그 안에 나를 집어넣고

죄책감도,

나 자신에 대한 혐오도,

죽고자 하는 마음도,



전부 태워 없애야만 할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나를 전부 태워버릴 화마처럼 느껴졌던 그 손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아주 뒤늦게 비참했다.



이토록 괴로울 수 있는 내가, 짐승일 리 없었다. 나는 인간이었다. 딜런이 말하고, 내가 끝없이 부정해온 인간.

 

숨을 쉴 수가 없다. 가슴은 무너졌고, 눈물은 여전히 말라 있었으며, 심장은 비명을 질렀다.



이렇게 끝이라니.

 

그딴 대화가 마지막이었다니.



확신으로 만든 껍질이 부서지고, 짐승의 목줄이 벗겨지면 남은 건 한 사람의 인간이다.

딜런과 함께 살아가고 싶었던,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휴버트 딘.